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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모텔에서 영화를 배웠다.
    지붕위의 세계 2021. 1. 6. 01:42

    나는 모텔에서 영화를 배웠다.

    나의 전애인은 잘 서지 않았고 조루였다.

    그래서인지 나와 모텔에 가도 항상 하기를 주저했다.

    침이 꼴딱 넘어가는 나로써는 그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했는데

    그는 나와의 잠자리를 미루기위한(?) 혹은 잘 서기위한 방편으로

    맥주를 봉다리 잔뜩사서 영화를 보는 내내 취하도록 마셨다.

    영화에 배드신이 나오면 또 한번 침이 꼴딱, 은근슬쩍 몸을 기댔다.

    그러면 그는 "영화에 집중하자" 그렇지만 영화를 봐도 사실 난 

    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나.

    원래 영화보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고 영화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우리는 잠자리를 할때면 대부분 모텔에서 했기때문에 모텔의 무료 아이피영화

    들을 봤다. 입에 담지도 못할 저질스러운 영화가 많았는데, 그럴때면 경멸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종종 명작이 껴있었는데, 다행스럽게 나의 애인은 고상한

    취향인지라 작품성있다하는 영화들만 봤다. 

    언제는 반지의 제왕을 보자했는데 나는 러닝타임을 보고 식겁해 그의 리모컨을

    뺏어 러닝타임이 짧은 로맨스 영화를 골랐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한편을 다 봤는데, 갑자기 리모컨을 다시 손에 쥐어들고는 다른 영화를 트는게 

    아닌가. "우리 한 편만 더 보자, 아직 안 취했어" 그때 난 정말 화가 나서 티비 

    화면을 부수고 싶었다. "무슨 두편이나봐! 한편만 보면 됐지, 여기가 영화관이야

    모텔이야!" 그럼에도 억지로 그를 끌어안을 수 없었기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마음을 내려놓는다, 생각하며 두번째 영화를 봤다. 

    두번째 영화는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웃기지도 않는 춤을 추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밀어붙여 결국 경기에 출전하고

    남주인공과도 사귀게 되는 그런 로맨스 영화. 두번째 영화의 막바지를 치닫는 중

    옆에서 나의 전 애인은 잠이 들어버렸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영화에 집중하는

    사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근데 그날은 영화가 재미있어서인지 좀 허탈하긴해도

    별로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영화가 내 머릿속을 채웠다고나 해야할까.

    그때 부터 난 영화가 재미있기 시작했다.

    그와의 만남을 1년 반동안 가지면서 모텔에서 본 영화만 해도 꽤 된다. 또한 그와 

    본 영화들이 꽤나 난해하고 상징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궁금증

    을 해소하기도했다. 나중에는 그와 한달에 한번꼴로 잠자리를 갖게 됨으로써 

    관계는 점점 식어갔지만 영화에 대한 열망은 커져서 혼자 노트북을 켜고, 티비를 켜고

    집에 있는 무료쿠폰으로 영화를 보곤했다. 때론 일상의 대화들을 대사로 써보기도 하면서. 

    비록 그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나에게는 영화가 남았다. 그때 본 영화들로 인해 나는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영화를 모텔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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